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 혁명의 시대 (문단 편집) === 영국 === 초반에는 그저 별 변화 없이 일본의 후원자로서 러시아랑 친한 이선을 갈구거나 일본을 이용하여 조선을 압박하는 당시 [[제국주의]][[초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역사의 변화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영국역사에도 점점 변화가 생기고 영국이 초강대국이다 보니 세계사도 점점 변화하기 시작한다. * [[글래드스턴]] 내각은 [[찰스 고든]]이 조선에 가느라 수단에 파견되지 않아 수단에서 죽지 않았고 붕괴해야하는 내각은 생존한다. 찰스 고든은 [[의화단 전쟁]]에서 죽는다. * 역사랑 달리 이선의 외교와 미국, 러시아의 압박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과 비슷한 조약을 맺는다. 이 때문에 한국을 착취못하고 일본과 청의 반발도 생각한 영국은 이선에게 적대적이게 된다. * 한 언론사가 [[루소포비아]] 때문에 이선을 러시아 스파이라고 몰았다. 이는 오히려 한국 내 반영감정만 실컷 키워주고 한국 내 [[친일]] 아시아주의자들의 세가 꺾이게 된다.[* 이 당시 친일 아시아주의자들의 적은 러시아인데 영국이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친영적인 일본인들에 대한 반감이 생겨 오히려 친러여론이 늘어난다.] * [[영국령 인도]]의 이웃나라 티베트를 친러 국가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러시아로부터 총기 조금 지원받았을 뿐이었다.] 침략해서 학살을 일으키나 가장 가난한 아시아 국가를 학살한 것에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경악하면서 영국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 이선의 노력으로 [[러일전쟁]]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영국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다. 원래 역사에서 러시아가 러일전쟁 패배로 힘을 상실하자 루소포비아가 사라져 새로운 위협인 독일에 맞서 러시아랑 동맹을 맺지만 역사의 변화로 전쟁이 늦어지면서 독일의 위협이 러일전쟁보다 먼저 대두. 결국 프랑스와 함께 독일과 맞서 싸우고 이를 위해 러시아와 협력할 생각이었는데 일본이 공격하면서 그 계획이 헝클어지자 일본을 방치한다. 덕분에 일본은 원래 역사의 러일전쟁보다 개고생을 한다. * 영일동맹을 체결할 때 러시아 견제를 위해서 한국도 같이 끼워넣는다. 처음에는 대영제국이 동방의 소국하고도 동맹을 맺냐고 비웃지만 이후 1차 대전이 터지자 동맹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던 영국인들은 한국을 띄워준다. * 전쟁이 끝난 후 소련이 등장하자 다시 루소포비아가 발동해서 한국을 일본을 대신할 새로운 동방의 헌병으로 길들이려고 한다. 그러나 이선의 책략으로 인해 한국에게 첨단 비행기와 전차기술만 퍼준 [[한국군 낚시전설]]을 당하고 당시 장관이었던 [[처칠]]은 친한파 정치인으로 낙인 찍힌다. * 한영우호를 위해 [[에드워드 8세]]가 한국을 방문하지만 친왕비를 희롱하는 바람에 양국간의 외교관계에 큰 문제가 생긴다. [[조지 5세]]는 아들의 성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게 사과를 하고 결국 영국이 한국에게 큰 빚을 지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이 [[데일리 메일]]에 폭로되면서 대규모 스캔들이 발생한다. * 역사의 변화로 노동당이 자유당과 손잡고 집권하던 중 [[이재각]]이 [[윤석열 UAE의 적은 이란 발언 논란|영국과 한국은 소련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싸우는 동지]]라는 연설을 하게 되고 이것이 영국과 소련간의 외교문제로 번지게 되어 영국은 이기회에 한국에 빚을 진 오리엔탈 스캔들을 무마할겸 한국에 강경대응을 하게 되고 [[이승만]] 역시 선거 승리를 위해 영국에 강경대응을 하면서 한국-영국 관계는 더 꼬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